보편성의 자로 문학을 볼 때
이윤기 (소설가, 번역문학가)
원래 저는 번역을 20여 년 동안 해왔습니다. 또한 세계 여러 권역의 신화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5년 전부터는 소설 쓰기에 몰두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40년 전에는 아주 독실한 기독 학생이었습니다. 중2 때 길에서 주운 성경을 읽다가 폭풍을 맞아서, 한동안 거기에 푹 빠져 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2 때 이어령 선생의 {지성의 오솔길}이란 책을 접했습니다. 그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허공을 향하여 독침을 쏘고 지상에 떨어진 웅봉(雄蜂)의 시체를 본다.' 저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스물 여덟 살의 재능 있는 청년이 작가의 미래를 이토록 비참하게 보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작가가 된다면 나 역시 '허공을 향하여 독침을 쏘고 지상에 떨어진 수펄의 시체가 되겠구나 하는 비장감을 맛보았습니다.
이 책의 본문에는 비장한 선언문이 나옵니다. '마르크스 레닌의 공산당 선언도 읽었고, 프랑스의 앙드레 부르통의 초현실주의 매니페스토도 읽었습니다. 그때 이어령 선생의 글 한 꼭지에 이처럼 선언문 같은 게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의 신은 어린 양의 생혈(生血)을 빨고 비대했다. 인간이 고아처럼 손을 벌리고 무엇인가 바랄 적에, 신은 목상의 얼굴로 침묵했다. 풍금을 울리지 마라. 지친 탕아가 될지라도 버리고 온 고향을 더 이상 찾지 마라. 이제는 잡아줄 양조차 없어, 신들은 모두 굶주렸는데, 홍수가 나더라도 우리 다시 노아의 방주를 만들지 말자.'
저는 그때 풍금 소리를 들으면서 목상의 얼굴을 한 신을 향하여 갈구하던 때였는데, '아, 이거 갈구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엄청난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로서는 상당히 큰 손실이지만, 교회를 뛰쳐나와서 광야의 땅으로 나섰습니다. 그 결과 머리가 허연 지금까지도 광야의 땅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문학은 15세 소년에게 폭풍을 몰고 왔던 힘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같은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직 문학에 희망이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제 체험이 깔려 있습니다.
저는 신화를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스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정(東征)에 나서서 인도를 침략할 때 일입니다. 당시 창의 길이는 4.4미터였다고 합니다. 말 타고 잡고 있기만 하면, 말이 찔러 주니까 그것으로 훌륭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파르타의 칼은 60센티미터를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스에서 주로 벌어졌던 근접전에서는 칼이 길면 쓸모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파르타가 마케도니아 군과의 전쟁에 나가면서 어머니에게 '저는 저 긴 창과 싸워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스파르타의 어머니는 '한 발 더 들어가서 찌르려무나' 하고 일러주었답니다. 우리 문학의 초창기에는 김동인, 이상 등 천재들이 소설을 썼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천재들은 컴퓨터 분야나 정치 등으로 빠져 나가고, 세칭 그렇지 못한 이들이 문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발 더 들어가서 마케도니아 군을 찌르던 스파르타 병사들 같은 지혜를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지적하기를 우리 작가들은 이불 속에 두 발을 넣은 채 소설을 쓴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글이 막힐 때 도서관으로 가지 않고 인사동 술집으로 달려가는 풍토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감히 이런 분위기를 바꾸러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허공을 향해 침을 쏘아보내고 있습니다.
감상을 넘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글을
제 경우에는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가 마시는 술, 먹는 안주를 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변화의 층'이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저는 어떤 사람의 글을 읽을 때면, 그 글이 그의 어떤 층위에서 발생하는지 얼마간 짐작을 하곤 합니다.
변화의 초급 단계는 형태가 변하는 것입니다. 폼(form)이 변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계로 트랜스폼(transform)이라고 부릅니다. 포도를 그대로 으깨어 짜면 포도주스가 됩니다만, 문학은 이런 날탕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트랜스폼은 사건 기자가 사건을 취재하여 기사를 작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설가가 어떠한 사건을 접한 다음 자신의 경험과 함께 용해시켜 다른 걸 만들어내는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저는 변성(變性), 즉 트랜스뮤테이션(transmuta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 개념은 원래 그리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창안한 것입니다. 이것은 포도가 삭아서 포도주가 되는 것과 같은 변화입니다. 원래의 포도와 포도주의 성분 자체가 달라지는 것, 즉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 상태입니다. 저는 이 화학적 변화 일으키기가 곧 우리 글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라고 봅니다.
저는 번역을 하는 분들에게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당신의 번역이 단어 대 단어를 옮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귀띔해 주곤 합니다. 이것은 일차적이자 물리적 변화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를 옮기는 일은 앞으로 컴퓨터가 다 할 것이므로, 문장의 뜻을 뭉뚱그려서 상상하고 전혀 다른 우리말 구문과 천칭(天秤)에 올려놓고 재보라고 권하곤 합니다. 한쪽이 기울며 토씨를 바꾸어 가다 보면 균형이 이루어지는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환원이 불가능한 변성의 단계입니다.
그런데 문학의 소임은 여기에서 끝나야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또 하나 더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가리켜 변역(變易), 즉 트랜서브스탠션(transubstan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본질 자체를 넘어가는 것으로, 가령 포도주를 마셨을 때 누군가 술에 취해 고꾸라지는데 비해, 그를 계기로 이성과 멋진 사랑을 나눈다면 이것은 앞서의 물리적 변화 화학적 변화와는 크게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어떤 현상을 만나서, 그것을 타넘어 갈 때는 반드시 변혁을 염두에 두었으면 합니다. 그것은 저 자신의 문학적 인생이 걸어온 길이기도 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번역을 했습니다. 번역은 어쨌든 일차적으로는 물리적입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책상머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등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입니다. 다음으로 저는 저술을 해왔습니다. 이것은 얼마간 화학적 변화를 동반한 작업입니다. 신화에 관한 저술 등에서는 그대로 옮기기보다 학문적으로 신화가 가진 뜻과 역사적 의의를 추구하는 과정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소설을 써나가면서, 제 작품이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는 등 저 자신이 직접 생산한 적이 없는 걸로 바꿔지는 날이 오기를 가다립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도 웅봉의 시체가 될지언정 허공을 향해 침을 쏘아 올리는 이들이 많을 줄로 믿습니다. 까뮈는 인간의 불합리한 운명을 시지푸스의 바위에 비유하곤 했습니다만, 우리도 거기에 동참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의 응답을 통하여 우리 문화와 소설이 나아길 길을 함께 모색해 나갔으면 합니다.
문: 화학적 변화와 변혁을 일으켜 가며 글을 쓰는 것이 온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세태는 인간성이 크게 사라져 가는 추세에 있습니다. '-같아요' 등 확신성 없는 언어의 범람과 함께 사리사욕과 물질만능이 만연된 세태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변혁을 일으켜서 글을 쓰십니까?
답: 네덜란드는 운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운하에 배를 지나가게 할 때면 양안(兩岸)에서 자동차가 끌고 갑니다. 한 자동차는 이쪽에서 끌고, 다른 한 자동차는 저편에서 끌고…. 오늘날 물질만능 풍조에 대하여 아주 비판적인 분들도 있고, 요새 아이들이 아주 엉망이야 하면 그런 말은 옛날에 로제타 스톤에도 다 기록되어 있다고들 합니다. "저는 우울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그 쪽으로 당기시도록 하는 한편, 저는 이쪽으로 당기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것을 보수와 진보 진영을 향해서도 말씀드립니다. 보수를 고수하는 분들은 그 길을 가도록 하고, 진보론자들은 진보의 길을 권합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길을 가도록 하겠다고 밝히는 거죠.
즉 변화라는 말로, 제가 시도하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요즈음 글 쓰는 이들을 보면 자기 결론부터 먼저 내고 들어가는 걸 봅니다. 도시의 공터에서 진을 친 채 구경꾼을 모으는 차력사들을 보십시오. 처음에는 구성진 노래를 한 곡조 뽑고, 그 다음으로는 차력사가 차력 시범을 보이는데, 이를 보고 구경꾼들이 더 모이면 이번에는 원숭이쇼를 한 차례 보여 줍니다. 그렇게 공짜 구경을 실컷 시켜준 다음, 한참 있다가 만병통치약을 꺼내 놓는 거죠. 그러면 구경꾼들은 미안해서 그것을 사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글을 쓰려는 분들은 구성진 이미자 노래로 시작하자고 말합니다. 나중에 가서 독자들의 눈을 확 끌어당겨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효과적입니다. 이른바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내놓고 글을 써 나가기보다는 차분하게 독자들을 끌어들인 다음,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하
는 지혜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소설가들이여 결론을 서두르지 말라
문: 선생님께서는 20여 년 동안 많은 문학 작품들을 번역해온 대표적인 번역가 중의 한 사람인데, 왜 최근 들어 번역보다 활발하게 소설을 써서 발표하는 쪽으로 전향하셨습니까?
답: 저는 그동안 300권 정도의 번역서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번역을 하면서 줄곧 느껴온 것은, 양서(洋書)들의 내용이 제 이해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대단히 보편적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저 멀리 동양에서 온 당신들도 이해할 수 있겠지' 하고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텍스트들을 영어나 일본어 등 외국어로 옮기려들 때마다, 이 특수한 정서는 동해를 못 건넌다는 판단이 선 때가 많았습니다. 한국 옷을 미국 시장에 내다팔려면 우리보다 훨씬 거친 미국 세탁기를 견뎌내야 하듯이, 우리 언어가 외국에 소개되려면 번역이라는 세탁기를 견뎌내야 된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번역도 중요하지만, 보편적인 정서를 지닌 소설을 제 자신이 직접 쓰고 싶어졌습니다. 지금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특수한 언어를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보편성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을까를 시험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 인문학이 크게 위기를 맞고 있다고들 합니다. 사람들이 몰리지 않고 책도 안 팔린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저와 만난 한 철학교수의 고백에서 보듯 토씨만 우리말을 사용할 뿐 대부분의 말을 생경한 외국어 그대로 쓰는 풍토에서는 개선이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저는 껍데기만이 아닌 알맹이를 우리 것으로 채우는 문학을 한번 해보고 싶어서, 감히 소설가의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또한 그런 점에서 문학의 위기를 맞은 문인들이 인사동에서 만나기보다 교보문고에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신화를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단군신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단군신화에서는 우리 조상이 할머니가 곰, 즉 웅녀(熊女)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를 외국에 소개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답: 제가 그토록 편집광적으로 몰두해온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신화는 수천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들이 모인 겁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지 못한 것들은 탈락을 거듭해 왔습니다. 제가 특히 그리스 신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지금으로부터 물경 2,800년 전에 헤로도토스, 호메로스 같은 이들이 쓴 것입니다. 거기에는 현재적 인간의 인식 가운데 훼손되지 않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그 인물형이 그 신화 속에 다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그리스 신화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저는 우리 나라의 비교신화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해온 사람입니다. 그동안 우리 나라에 들어온 모든 비교신화들은 서양인들에 의해 씌어졌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이 쓴 명쾌한 비교신화를 저는 아직까지 보지 못하였습니다.
신화에는 원본신화와 사회적 신화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전자는 의식 저 밑에 존재하는데 반해, 후자는 필요에 의해서 어떤 권력이 사회화시킨 신화입니다. 가령 조선 건국을 미화시키기 위해서 만든 용비어천가, 로마의 건국에 즈음하여 부족한 문화적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버질, 오비디우스 등에게 의하여 씌어진 {아이네이야스}, {변신 이야기} 등이 그것입니다.
제가 곰신화를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변조 미화할 경우에는 당장은 바뀔 수 있겠지만, 돌아서면 우리 민족이 가진 곰 토템에 따라 원본신화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문화란 어떤 동아리 사이에서 오랜 기간 동안 켜켜이 쌓이고 쌓여온 것입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할지라도 하루아침에 부숴버릴 수 없는 것이 곧 문화입니다.
또 우리 나라에는 애기장수 설화가 있습니다. 정치 권력들이 용인해오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작가 구효서가 의적(義賊)으로서의 임꺽정을 정반대의 이미지로 그린 글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곧 사회적 신화입니다. 그러나 임꺽정이 우리 민족들 사이에 심어져 온 이미지는 일시적이라기보다, 그가 지닌 민중적 정서에 의하여 오랫동안 각인되어 온만큼 사회적 신화는 금새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웅녀 신화를 미화하려들기보다 소중하게 가꾸고 그 가운데 숨은 뜻을 새기는 노력이 더 소중하다고 봅니다.
문: 원본과 자신의 번역을 저울에 재보아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살펴서, 빼거나 보태도록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번역 작업을 할 때는 원작을 완전히 흡수해서 소화해야 내 말로 풀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창작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선생님의 경우에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면서 그 많은 양의 번역을 해내셨는지요?
답: 지난해에 제가 번역해낸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 원작)이 해방 이후 가장 잘 된 번역 작품으로 선정된 적이 있으므로 우선 그에 대해 답변을 할 만한 자격은 갖추었다고 생각됩니다. 가령 원문에 라틴어로 '루모르 볼라트' 즉 영어로 'lumor flies'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시다. 직역하면 '소문은 난다'가 되겠습니다만 그대로 둘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말을 염두에 둔다면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또 영어로 'Oh, cursed destiny!'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시다. 이것을 쉽게 '오,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옮기고 말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살아 있는 말이 아니라 사전에 갇혀 있는 말입니다. 사전은 말의 감옥입니다. 그 재소자들로 하여금 우리 문장을 꾸며서는 안 됩니다. 펄펄 살아 있는 말들을 찾아서 제자리에 써 주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들여온 영화 원제에 'Nothing to lose'가 있었지요. '아무 것도 읽을 게 없다'로 옮기면 괜찮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썅 밑져야 본전이다'로 옮기면 훨씬 생동감이 붙지요. 즉 사전에 갇혀 있는 말로만 옮기려 들지 말고, 원문과 우리말을 이어주는 적당한 말찾기 훈련을 끈기있게 오래 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느 날 아침에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닙니다.
번역자들은 흔히 얼렁뚱땅 넘어가면 돈도 들어오고 시간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제가 신화를 많이 다루다보니까 영웅 신화에 괴물 죽이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최근에 만난 한 기자도 넌지시 "이번에 괴물 한 마리 죽이셨어요?" 하고 우스갯말을 해왔습니다만, 번역을 하면서 제가 확실하게 죽인 괴물을 두 마리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심심풀이라는 겁니다. 적어도 저는 혼자 있어도 심심한 것은 모르고 지냅니다. 화투나 장기, 대학 시절 그 흔하던 당구도 쳐본 적이 없지만 심심한 것은 모릅니다. 김용택이 "나는 저 산만 바라보더라도 한 백년 살 수 있다"고 했지만, 백년은 아니더라도 며칠은 끄떡없을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는 얼렁뚱땅이라는 괴물입니다. 돈은 다급하고 시간은 없는데, 언제 미주알고주알 사전 찾느냐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 유혹을 저는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비교적 그 얼렁뚱땅이라는 유혹도 죽여 버린 것 같습니다.
결국은 언어의 문제입니다. 물리적 번역은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겠지만 화학적 변화를 수반하는 번역은 이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문학의 힘이 바로 이런 데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능력을 갖춘 자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작가와 번역가를 먹여살리는 게 아닐까요.
신화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놓인 교량
문: 선생님의 젊은날의 독서 편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가장 많이 영향을 받으셨다는 {우주와 역사} 그리고 {인간과 상징}을 중심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답: 중2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도서관에서 사서 일을 하며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지내다 보니 책이 너무 좋아서, 공부는 접어둔 채 책만 읽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판에 박힌 공부를 하기보다 책에 파묻혀 지냈습니다. 주산 시간에 선생님께서 그런 저를 꾸짖다가 주산으로 그만 머리를 긁어 상처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인의 영감을 가진 소년의 머리를 주산으로 긁는 게 무슨 학교냐는 생각이 들어 학교를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2학기는 안 나갔지만 졸업장은 받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였지만 두 달쯤 다녀보니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일본어와 영어로 된 책을 읽었습니다. 그때 엘리아데의 {우주의 역사}와 칼 융의 {인간과 상징}을 읽고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로서는 우리 조상들만 슬기롭고 종교적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주의 역사}는 인류가 지닌 종교에 대한 보편적인 모습을 그린 책입니다. 원제는 {영원 회귀의 신화]인데, 그에 따르면 인류가 가진 종교적 체험은 나라를 가릴 것 없이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각론은 다르지만 총론은 같은 공통점을 추려낸 겁니다. 그걸 읽으면서 제가 인간에 대해 너무 몰랐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책의 앞장에 '이 책을 눈꺼풀이 한 꺼풀 훌렁 벗겨지다'라고 쓴 게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우리들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꿈의 분석을 통해, 분석의 대상이 된 사람에게 무슨 장애가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프로이트가 관찰한 바로는 일정한 패턴이 어느 환자에게나 나타났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이건 프랑스 출신이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그것을 가리켜 '고대의 잔존물'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즉 고대의 찌꺼기가 인류에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받아, 융은 그것을 가리켜 '고대의 찌꺼기인 것이 아니라 인류는 보편적 무의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무의식 안에는 원형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로써 융은 프로이트에게서 분리되어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융은 신화를 인류의 보편적 무의식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저는 융의 마지막 저서인 {인간과 상징}을 번역하면서, 신화에 대한 편집증적 관심이 더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책 속에 언급된 '현대의 회화'도 묵상을 하면 즐길 수 있다는 말에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신화를 읽지 않으면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교량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도나 네팔에서는 쓰는 인사말인 '나마스테'는 '여러분 안에 깃들인 신에게 경배합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저도 신화 이야기에 접하면, 내 속의 신화와 당신 속의 신화를 랑데부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현상을 보편적 시각으로 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제 책을 읽으신다면 저와 마찬가지의 충동을 받게 되실 겁니다.
문: 저는 우리 나라 신화가 불교를 만남으로써 일대 전기를 맞았다고 봅니다. 즉 서기 370년경 불교를 만남으로써 단군신화 신화적 삶이 바뀌거나 단절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신화적 세계관에 비추어 볼 때 그때까지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우리 문화는 독특하여, 우리만이 슬기롭고 은근과 끈기를 지닌 백성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조각이 발달되어 있지 않은 현상을 두고, "그리스나 로마에는 대리석이 있었지만 우리 나라에는 정교한 조각이 되지 않는 화강석밖에 없어서 조각이 발달되지 못하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 로마에 가보면, 대리석을 쪼아 만든 게 아닌, 진흙으로 구워 만든 테라코타들이 널려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소재의 차이가 아닌 문화의 차이입니다.
저는 불교가 신화를 없앴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신화를 없앤 것은 오히려 유교입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자신들의 전통과 우리 문화를 접합시키려 애썼기 때문입니다. 가령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삼신각(三神閣) 등을 우리 무속 신앙에 있던 겁니다.
그러면 우리 신화는 왜 이렇듯 단편적으로밖에 전해지지 않았을까요. 삼신할매나 영동할매는 아들이 없는 등 계보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800년 전의 그리스 문화나 4000년 전의 이집트 문화는 문자를 배경으로 성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리스 신화가 유용하게 이용되는 이유 가운데에는 2800년 전에 이미 신들의 계보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화의 태동기에는 그만큼 문자 생활이 충분치 않았고, 안향 등 유학자의 탄압을 받아 신상 등이 크게 말살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신화에 비교적 온전하게 보관되어 있는 것이 바리데기 신화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무가에서 구전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저는 새해부터 이것을 정리하여 시베리아의 신화와 연관시켜 연구해 나갈 작정입니다.
문: 프로이트와 융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만, 내면에 있는 것을 끌어내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무의식의 세계를 밖으로 드러내는 데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답: 융에 따르면 개인의 의식에는 트래스홀드(threshold), 즉 문턱이 있다고 합니다. 이 문턱은 우리의 의식이 강고하게 있을 때에는 무의식이 넘나들지 못하지만, 가령 잠을 이룰 때 등에는 빗장이 풀리고 만다고 합니다. 그때 문턱을 넘어 올라온 것이 곧 꿈입니다. 바로 그 꿈을 분석하면 그 사람의 무의식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담긴 책이 {꿈의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개인이 꾸는 꿈은 개인의 무의식을 반영하지만, 사회 즉 우리들의 모듬살이가 꾸는 꿈을 가리켜 신화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의 조셉 캠벨은 '꿈은 개인의 신화요, 신화는 사회의 꿈이다'라고 갈파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무의식을 알고자 하면 꿈을 분석해 보는 게 좋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꿈일기를 써 왔습니다만, 꿈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면 무의식에 많이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 우리 시의 잘 된 시는 외국어로 번역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외국 문학을 번역할 때 그런 경우를 만난 적이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답: 우리 시를 외국어로의 번역 문제와 관련하여 제가 겪은 재미난 경험이 있습니다. 4년 전 제가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에 있을 때 고은 선생께서 시 낭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한국시를 영어로 들으면서 그렇게 재미난 경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고은의 시에 이런 게 있습니다. 원문은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대략 '어느 날 호박꽃에 벌이 갇힌 채로 서리를 맞아 버렸습니다' 하는 구절입니다. "호박꽃에 벌이 갇힌 채 그 사이로 빛이 비치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정의한단 말입니까" 하고 고은 선생은 말했습니다. 우리 정서에서는 호박꽃은 '아름답지 못한 것'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영어로 펌킨플라워(pumpkin flower)는 쓸만한 것이라는 뜻이 되어, 미국인들은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십상입니다. 고은 선생이 선시(禪詩)를 읽다가 음담패설을 해서 설명하닌까 그제서야 미국인들은 비로소 웃기 시작하더군요.
여기에 우리 문학이 나아갈 길이 숨어 있다고 봅니다. 워드워즈가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했듯이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야 합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만이 아는 독특한 정서를 담은 작품으로 나아가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일본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다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의 경우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가와바다의 경우 {설국(雪國)}을 보면 번역될 수 없는 일본의 진정성을 극한까지 밀고 내려간 작품입니다. 사이덴 스티커라는 서양인이 영어로 번역한 걸 읽으면서 전 그 훌륭한 번역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티커가 노벨상을 타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그 책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적셔 주지 못하였습니다.
저와 사이덴 스티커는 공감하였습니다만, 유럽인들을 이해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가 받은 노벨문학상에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십육칠 년 뒤에 상을 탄 오에 겐자부로의 경우는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일대 사건입니다. 그는 영어로 읽고, 독일어로 인터뷰할 수 있고, 프랑스어로 꿈을 꿀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을 정도로 세계화된 사람입니다. 그의 글을 읽고 있자면 꼭 영어로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는 드디어 일본이 촌에서 도시로 나온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자리가 있을 때면 늘 가와바다 야스나리처럼 깊게, 오에 겐자부로처럼 넓게 보고 써야 된다고 강조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달라야 합니다.
저는 외국의 문학 작품을 번역할 때마다 심각한 고민을 합니다. 가령 영어 원문을 직역하면 '그때 장군은 그리고 들어가 등 뒤로 보트를 불태웠다'라는 구절이 있다고 합시다. 이 문장의 뜻을 새겨 보면 '배수진을 쳤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배수진을 쳤다'고 해 버리면 '등 뒤로 보트를 불태웠다'는 그 표현은 우리 문학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됩니다.
또 병사들이 많이 몰려오는 것을 우리는 '새까맣게 몰려온다'고 표현하지만 영어로는 '늙은 개의 털 속에 들어 있는 벼룩 수만큼이나 많았다'고 표현합니다. 저로서는 '새까맣게 몰려 왔다'고 옮겨 버리면 그만이지만, 다른 표현은 획득하지 못하고 맙니다.
또 '그는 책을 하도 많이 읽었는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모서리는 늙은 개의 귀 같았다'라고 직역되는 구절이 있다고 합시다. 이런 구절을 대할 때마다 고민을 많이 합니다. 우리말로 치환할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번역에서 왕도는 없는 만큼 나머지는 여러분의 몫으로 놓아둡니다.
문: 영상 번역 시험과 문학 번역 시험은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요.
답: 번역은 기본적으로 고도의 문학 행위입니다. 그것은 영한사전이 좋은 것과는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번역을 하고자 하는 분들을 무엇보다 번역된 명문들을 많이 읽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 경우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사람은 지금은 전북 부안에 내려가 농촌 공동체 운동을 벌이고 있는 윤구병 교수입니다. 칠십년대 중반 브리태니커 사전이 출간될 당시 홍보용 책자로, 그의 번역으로 리차드 아머의 {모든 것은 돌멩이와 몽둥이로 시작되었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이 번역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아, 수십 번 읽고 또 원문과 대조하면서 균형이 갖춰진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좋은 번역가가 되려면 좋을 번역 문장을 많이 읽어야 된다고 봅니다. 글이 좋으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처럼, 영어 단어보다 좋을 글을 많이 읽기 바랍니다.
문: 원형은 번역이라는 세탁기를 거쳐서도 살아남는 게 좋은 거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와 관련된 경험을 들려 주십시오.
답: 저는 얼마 전 신문사 측의 주선으로 방한한 알바니아 출신의 작가인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이스마엘 카다레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과 대담하면서 참 재미있는 걸 느꼈습니다. 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나서 그를 만났는데, 약력을 보니 고향이 '디로 까스떼라'였습니다. 그래서 질문에 들어가면서 "저는 알바니아어를 모르는데 디로 까스떼라는 둥근 성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세요?" 하면서 놀라더군요. "그리스어로는 '뒤로 가스트로'이며 호머의 {일리아드}, {오딧세이}에 보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라고 제가 답하면서, 그 사람과 참 대담이 부드럽게 이루어졌습니다. '호머'라는 대단히 보편성을 지닌 것을 매개로 말을 하게 되니 대화가 잘 되어 나간 거죠.
즉 전라도말, 경상도말 등을 갖고 현미경 수술을 하듯한 문학도 필요하지만, 먼 알바니아와 동북아 최북단에 있는 나라의 작가 사이에 오간 것처럼 인간이라는 것, 인류로서 공유하는 것을 다루어 보면 어떻겠냐는 거죠.
박경리의 {토지}가 프랑스에서 일부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는 같은 '땅'을 쓰는데 펄벅과 왜 이리 다르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우리들에겐 감명을 주는 뛰어난 작품인데도 말입니다.그래서 번역을 더 하자고 했더니, 십분의 일로 줄이면 하겠다고 했답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얼마나 보편적인 것과 떨어져서 각론화되어서 살고 있느냐, 그러므로 그것은 외국어로 번역될 수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문: 선생님의 작품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답: 제 개인적으로 단편 {손님}을 가장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월남전 참전의 와중에서 씌어진 작품인데, 71년 훈장을 하나 받은 후 배정 받은 연대 본부의 시끄러운 발전기 옆에서 썼습니다. 그것을 발표한 후 25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인 김정란이 한 문학평론에서 신화 이미지로 분석해 놓았더군요.
그런데 이 작품은 제가 신화를 공부하기 이전에 씌어진 작품입니다. 김시인이 제가 신화를 좋아하는 줄 알고 그것을 신화학적으로 분석해 놓은 걸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발전기 소리가 세상과 저를 차단시키기도 하고 불러내기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신화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고 쓰면 아마도 신화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목적 의식 없이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충동에서 나온 작품인지라 지금도 깊은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청춘을 낭비한 유죄를 인정한 빠삐용처럼
여러분 영화 {빠삐용}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영화는 앙리 샤리엘이라는 프랑스인이 누명을 쓰고 갇혀 있다가 탈출하는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보면, 빠삐용이 꿈속에서 가상재판을 받는 대목이 나옵니다. "너는 그를 죽였지?" 하면 "안 죽였습니다", "이 일은 네가 했지?" "안했습니다", "유죄를 인정 못하겠느냐?" " 못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한 가지 혐의를 걸겠다. 너는 청춘을 낭비했지?" 하는 질문 앞에서 빠삐용은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맙니다.
저 자신도 열심히 살아왔다고 하면서도 유죄를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는 삶은 그 복역인 것 같습니다. 연말입니다. 모두들 지난해를 돌아봅니다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내일을 보아야 합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테네시 윌리엄즈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그리고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동안 시간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시계가 뱉어내는 소리는 재깍재깍재깍이 아니고 상실실상실로 들려올 것이다' 우리 모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어제 시점을 바로 보고 우리가 목졸라 죽인 것이 시간이었는지 반성하면서 새 날을 열어 갑시다. ◈